비현실적인 부(富)와 비현실적인 비극 사이에서

2025년 11월 · 편집자 노트

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하겠습니까? 크고 화려한 집입니까, 작지만 소중한 방 한 칸짜리 집, 그리고 그 집을 빼앗기고 눈물짓는 이들입니까?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이라면 집을 잃고 가슴을 치는 청년들에게 가셨을 것입니다. 온 세상이 위를 쳐다보며 권세 가득하고 부유함이 넘치는 이들을 칭송할 때, 우리 주님은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와 그 낮은 곳에서 흐느끼는 이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.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. 가장 높으신 분이며, 온 세상의 왕이셨음에도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.

청파교회 주일 설교 말씀을 김형욱 목사님이 『스위트 홈』 이야기로 시작했다는 소식을 여기저기서 전해들었습니다. 어제는 기독교에서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기가 시작되기 전 주이자 예수 처형을 묵상하기도 하는 주일이었고, 설교 말씀은 지극히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온 세상의 왕인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함께 있을 ’하나님의 나라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. 퇴근 후에야 뒤늦게 영상으로 설교를 접했는데, 설교를 듣다가 금요일에 있을 북토크 신청자가 미리 보낸 질문 한 개가 떠올랐습니다.

전세사기 피해자들과 함께하고,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텐데요.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.

북토크에 초청된 패널에게 온 질문의 해답으로 이 설교문을 공유하고 싶어졌습니다. 북토크 자리에 교회 다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,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요? (죄사함과 구원으로 납작해진 예수 말고)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며 몸소 보여주셨던 매우 활동적이며 이야기꾼이었던 예수라면 좋겠고요.

여기저기서 전해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‘복음‘, 좋은 소식을 알려주셔서들 감사합니다. 책 장수 옷 장수를 동시에 하겠다면서 책 장사에서 고전 중인 사람에게 ‘박씨’를 떨어뜨려주시는 분들, ’우정출연‘이라 말하고 시간 뺏는 일에 기꺼이 동원돼주신 북토크 패널, 응원해주시는 독자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.

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교회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. 모든 밀려남과 억울함의 위치에 놓인 이웃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시작해볼 수 있겠지요. 북토크 때 패널로 나와주시는 분들께 저도 질문해봐야겠네요. 내년엔 전세사기라는 사건에 닥처 이 사회로부터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이 그 상처가 아물어 가기를, 이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덜 사악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.

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처음에 믿기질 않았어요. 뭐랄까, 전세사기 알자마자였던 10~11월은 인생이라는 게 없었던 느낌이에요. 계속 우울하고 침몰하는 것 같았거든요.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조차 ​​사치로 느껴져서 밥을 못 먹으니까 출근해서도 굶고, 잠도 안 자고, 울기만 하고, 한두달만에 7kg가 빠지더라고요.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왔어요.
— 박혜빈, 『스위트 홈』, 206-207

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믿기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. 20대 청년이 사회에 나오자마자 사기를 당하고 집을 잃은 사건도 비현실적이고, 같은 20대 청년이 137억 집을 현찰로 샀다는 소식도 비현실적입니다. 그러나 두 청년이 동시대를 살고 있음은 현실입니다.

저는 앞서 말씀드린 그 연예인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거나 규범적 혹은 윤리적 판단을 내리려 함이 결코 아닙니다. 자기 재능과 능력으로 얻은 결실을 비난하려는 의도 또한 추호도 없습니다. 그러나 두 청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. 세상은 크고 화려한 집을 산 이를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합니다. 반면 집을 잃은 청년들을 향한 시선은 빠르게 거두어들입니다. 오히려 계약서를 신중하게 봤어야 한다거나 젊은 날의 좋은 교훈으로 삼으라는 위로를 가장한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 일쑤입니다.